내가 중국에 있을 때 처음엔 매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편의점 등에서 나는 두손으로 돈이나 물건을 주고 웃으며 인사도 잘 했는데, 종업원이 물건과 잔돈 등을 테이블에 거의 던지듯이 하는 것이었다. 참 적응이 안되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나라라서 그런 건가?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미국을 대놓고 무시하는 나라는 딱 하나 북한이고, 중국을 무시하는 나라는 세상에서 딱 하나 한국이란다. 참 재미나면서도 씁쓸하다.
당시의 나는 중국에서 꽤 오래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일단 중국 문화에 대해 존중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왠걸, 좀 지나니 오히려 편해졌다. 니(你)가 한손으로 물건을 주니 나도 물건을 한 손으로 주고, 니(你)가 반말을 하니, 나도 반말을 한다. 덕분에 나의 나머지 한 손에는 들고 가던 짐을 들고 그대로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왔고, 중국어를 잘 못 해도 별 상관없이 아무나 보고 나이 직급 상관없이 니(你)라고 부르고, 회사에서 진짜 직속 상사가 아니면 좀체 닌(您, sir 또는 mam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한자를 보면 마음을 아래에 깔고 너를 거기다 올려둔다는 걸로 대략 이해가 될 터)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었다. 좀 덜 공손해도 되니 신경 쓸 게 없어졌다. 중국어에는 높임말이 없다. 물론 미국 정도의 존칭도 있고, 말투는 툭툭 던지듯이 하지만 위아래 개념은 확실히 있다. 다만 일상에서 일일이 존칭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오늘, 페이스북의 글을 보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지천명에 가까워진 친구 하나가 평소 매우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동네 음식점에서 젊은 직원이 메뉴판을 툭 던지고 간 사건에 당황하여 바로 음식점을 나왔다는 글을 보고는 댓글을 달다가, 혹여나 내 부족한 글 몇 자에 삼십년지기 친구가 맘 상할까 봐 글을 포스팅하지 못했다.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서울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 무조건 높임말을 써야 하는 상황. 또는, 처음 보는 이에게 반말하면 바로 무례하다고 느끼게 하는 이런 한국만의 특수 상황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오히려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메뉴판을 던지는 것도 비슷하다. 젊은 친구(나이 든 친구라면?)가 메뉴판을 던진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그게 맘에 걸리면 그 음식점을 나오는 게 맞다. 첫 시작이 꼬인 것이 끝까지 문제없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통상 메뉴판을 던지면 그릇도 던지고, 좋은 요리사의 맛이 있는 음식도 맛이 없게 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극 존중하는 한국의 좋은 전통적 상황과 대도시의 많은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 사용의 모순과 비효율은 “너님”과 같은 이상한 존칭을 만들고 있고, 고객님 이러시면 고소합니다. 이런 애매한 존경과 협박의 공존상황은 오히려 예절의 탈을 쓴 비아냥과 같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건지…. 높은 수준을 원하면 직원을 수준 높게 뽑고 걸맞게 대우해주는 장소로 가야 할 것 같다. 중국에도 수준 높은 곳에 가면 매우 깨끗하고 디자인도 좋다. 직원으로부터 극존칭의 대명사를 지속해서 들을 수 있고, 식자들의 모임에 가면 사자성어의 향연과 옛 성현의 말을 시처럼 읊어주고 해석까지 친절히 해주는 교수들도 많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오성급을 바라지 말자.
나의 요즘 생각은. When you are good to me, I will be good to you. 니가 나한테 잘하면(잘할때) 나도 너한테 잘할꺼야. 이정도…
사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굴려고 하면 가끔은 다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심지어는 무능함과 불쌍함을 무기로 삼는 이상한 사람도 작은 수이지만 분명 있다. ^_^.
그래서 개인 간에도 많은 단계의 인사와 악수와 알아가는 과정 등이 필요하고, 신분 확인이 필요하며, 단체에서는 사람을 신뢰하기 전에 행정적 확인과 인사 검증이 필요해진다. 자격증도 확인하고, 학력도 본다. 요즘엔 건강검진 결과도 본다. ^_^
2024.01.10. Jaee.net. 주인장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