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정말 축하한다…
글구 보내기로 한 글이다…함 읽어봐라……재밋다…..
압구정동에 불을 지르다
나의 여름방학 첫날이자 그가 서울로 대학 편입을 위해 상경한 날, 나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러 한강으로 나갔다. 한강에서 술을 마신다라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이벤트와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그 속에서 지내는 일종의 풀이굿이거나, 슬럼프가 끝난 후 발악의 시작을 알리는 전초전 파티나, 나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을 위해 열기도 하는 여러 행사의 대표급이었다. 막걸리 한 병과 소주 세 병을 들고 정민이 형과 한강에 간 건 제주도에 살기 때문에 얼굴을 보기 힘든 그가 반갑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가 부모의 닦달 끝에 서울 신촌 근처의 대학에 편입하게 되어 상경하게 되었으니 그의 자유를 축하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작년에 내가 기어이 외고에 합격했을 때에도 고3짜리 친구와 함께 이곳에 소주병을 들고 왔었다. 녀석과 나는 처음에는 점잔을 빼면서 마시다가, 들어갈 만큼 들어가자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평소에 안 하던 이야기들이 고양이가 가지고 노는 실타래처럼 모조리 풀어졌고, 중학교에 다니던 3년 동안 쌓인 게 많았던 나는 갑자기 한강변을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나를 잡으러 오다가 포기했고, 뛰고 뛰다가 웬만큼 술이 깨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경 이었다.
7월의 여의 나루는 열대야 때문에 초저녁부터 가족들이 나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과 대학 1학년 남학생이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기에는 너무도 건전하고 가족적인 장소였다(글쎄 벌써부터 널린 소주병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같다). 우리는 걷고 걷고 고르고 골라 다리 밑의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곳, 그 중에서도 성인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조물락 거리지 않는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비닐 봉지에서 술들을 꺼내 놓고, 감자칩 과자를 뜯어 가운데에 놓고 느긋하게 술을 들기 시작했다.
“형, 그래도 첫 잔인데 우리 무언가 빌면서 건배하자.”
“야 그런 거 중학생 때부터 천 번은 더 했어. 그거 제대로 먹혔으면 난 지금 고아다.”
“나 원, 모범생이었군.”
결국 뭐뭐를 위하여 따위의 말은 하지 않고 우리는 말없이 소줏잔을 듣기 좋게 짠, 부딪치고 깨끗이 원샷을 했다. 입안을 쓰고 진한 알코올이 훑고 지나갔다. 강 너머 63빌딩이 뻣뻣하게 시가지 틈새에 서 있었다. 퍼렇게 물들어 가고 있는 하늘을 뒷배경으로 하고 뒷짐을 지고 선 63빌딩은 초저녁의 어스름에 싸여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마치 시끌벅적하고 흥청망청한 인간들의 문명적 자존심을 뜻하는 신종 바벨탑 같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멸망하기 직전의 사치스러운 도시 한가운데에 초췌하고 음침하게 선 예언자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강바람이 시원했다.
“형 홍대 갔으니까 존나 좋겠네. 학교 밖만 나가면 라이브 클럽들 쫘악 있을 거 아니야. 자취 할 거니까 엄마가 간섭도 안 할 거고.”
“근데 컴퓨터가 없어서 통신은 못 할걸.”
시대가 지나고 갖가지 진기한 것들이 화려히 모습을 내비치며 마주침과 인연의 매개체도 새로워진다. 우리는 어느 무료 PC통신망의 음악 동호회에서 만났다. 그러니까, 얼굴을 마주치고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통신으로 불나게 쪽팅을 하면서 친해진 사이이다. 통신망에서 친해진 사이에 대해서 참 많이들 걱정도 하는데, 우리는 10대 대화방에서 번개팅으로 만난 것도 아니며, 이런 저런 시시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나 몇 시간 나눴다고 애인이니 친구이니 하는 쓰레기 같은 관계도 아니다. 유독 그와 친해진 이유는 음악 동호회 회원들 중에서도 비교적 진보적이고 정치적으로 좌파적 성향(?)을 띤 몇몇 사람들 중 그와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본거지 역할을 하던 게시판이 운영진 측에 의해 폐쇄되고 ‘우리들’ 중 몇몇이 마지막 발악을 하다 결국 동호회에서 강퇴 당하고 말았는데, 그런 사람들끼리의 시시콜콜 조잘한 싸구려 연대감이나 동질감 덕에 우리(아니, 혹은 나)는 더욱 동료 의식을 느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내가 매우 좋게 보는 인간형인데, 특히 나이 차이나 나이 차이에서 오는 십 원짜리 권위 따위는 똥강아지 발톱쯤으로 여긴다는 사실에서 나는 그를 아주 멋지게 쳐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멋진 푸른색인 하늘과 축축한 강을 바라보았다. 알아서 각자 소주를 잔에 따르고 홀짝이다 입에 훌렁 털어넣고, 말없이 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아직 말은 많이 하지 않았는데, 이는 술이 웬만큼 취한 다음 뇌주름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위한 준비 단계나 다름없다. 목구멍에 더 이상 쓴맛이 떼를 쓰듯 달라붙지 않고 비교적 부드럽게 소주가 넘어갔을 때, 내가 입을 뗐다.
“형, 하늘 정말 너무 청명하지 않냐? 나는 이러다 진짜 밤 되면 너무 이쁘고 깨끗해서 하늘도 못 쳐다 봐. 아, 진짜 말도 못하게 이쁜데 이쁘기만 해서 안타깝잖아. 저런 하늘을 묘사해 낼 표현도 도저히 없을 것 같고, 실력 있는 화가도 저런 건 못 그리잖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허무하리 만치 아름답다구. 세상에 뭐 저렇게 날렵하고 죽이는 색이 다 있을까.”
정민이 형이 잔에 반쯤 남은 소주를 훌렁 마시고 대답했다.
“김군아, 넌 장차 국문학도가 되겠다는 자식이 표준말도 모르냐. 이쁜 게 아니고 예쁜 거야. 그리고 인간은 뭐든지 다 갖고싶어 해. 결국 하늘은 소유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안타까운 거겠지.”
“그럴까?”
형도 웬만큼 알코올에 풀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쯤 되니까 담배가 땡기기 시작한다.
“형, 담배 있어?”
“오냐. 너 줄려고 특별히 던힐 갖고 왔다.”
“오, 이쁘기도 해라.”
형이 주머니에서 던힐 담뱃갑을 통째로 가볍게 건네주며 말했다.
“근데 외고 다니는 애들도 담배 피우냐? 너야 특이 인종이지만 거기 다 왕범생이들 있는 데 아니야?”
“별로 다른 거 없어. 완전한 개날라리 들만 없지 뭐 여기도 이런 인간 저런 인간 다 있어. 강남 나이트들 줄줄 꿰고 있는 남자애도 있고. 근데 걔가 전교 3등 짜리야. ”
“히야, 거야말로 특이 인종이네.”
“범생이 집합소는 아니라니깐. 나도 들어오기 전엔 몰랐어. 내가 들어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지만 확실히 선생들 수준도 괜찮아. 하나 빼고.”
강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라이터 불길이 엇나가서 잘 안 붙여졌다.
“나도 대학가니까 그렇게 개새끼들한테 배우는 건 아니라서 참 좋드라. 그래도 명색이 대학 교수니까….그래도 존나 파시스트인 새끼들도 꼭 있어.”
“씨발, 우리 학생주임이가 개파쇼라니까. 윤리 선생인데 개파쇼 우익분자에 지독한 섹시스트야. 신사 티라도 내면 말을 안 하는데 거기다 또 변태야. 윤리 시간마다 속이 터지려는 게 양은 냄비에 니트로 글리세린 넣고 끓이는 거 같다니까. 맨날 속으로 ‘선생님, 너무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선생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또 뭐더라 여성이 차별 받는 건 역사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레 필요에 의해 도태되고 억압받는 거라 여성운동단체에서 잔소리하는 건 다 개소리래. 그 얘기 듣고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거지 역사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소리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하다가 종이 땡 쳤어.”
나는 말을 끊자마자 분해서 담배를 팍 밟아 끈 뒤 빈 소주병을 치우고 새 소주병을 뜨드득 돌렸다. 순간 머리 주위를 무언가 기분 좋게 감쌌다.
“너 몇 년 전엔 그런 거 다 말하면서 개겼다며.”
“그게 내가 그냥 개긴 것도 아니고 거의 게거품 물고 개겼으니 개기면 피곤하단 걸 알잖아. 그리고 우리 반에 성격이상자가 하나 있는데 걔가 수업시간에 튀는 애들은 다 이상한 눈으로 보고 존나 피곤하게 만든다니까. 여기 오면 없을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 어딜 가나 그딴 년들은 꼭 있더라. 그래도 비교적 날라리 같던데 뭐더라, 걔네 아빠가 어디 무슨 회사 사장이래. 그 씨발년 중학생 때부터 돈 믿고 얼굴 믿고 열라 설쳤을 걸? 나 같은 애들 따 시키는 재미로 살고.”
“재수 없네.”
서툰 발음을 내뱉는 그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삐져 나왔다. 그리고 내 빈 잔에 소주를 채워 주었다.
“형, 나도 한 잔 줄게.”
“야, 벌써 하늘 많이 꺼매졌다. 아, 좀 더 부어봐.”
나는 소주병을 내려놓고 맑고 투명한 소주가 가득 찰랑이는 소주잔을 형의 잔에다 경쾌하게 부딪쳤다. 그리고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어머니들의 불굴의 의지로 외고와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들의 행운을 빌며.”
“홍대야. 그리고 결국엔 이건 시대적 상황에 우리가 좆같이 밀린 거라고. 생각해 보면 잘된 걸지도 몰라.”
“서울에 있으면 서울대지. 근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도 엄만 서울에 있어도 홍대 밖에 못 갔다고 열라 뭐라 하던데. 한번 더 휴학하고 재수하라고 할 지도 몰라.”
“욕심이 많으시네. 서울까지 올라갔으면 됐지 뭘 또. 아, 왜 형이 잘 하는 소리 있잖아. 제주도 억양으로 ‘개소리 하지 맙서’ 하는 거. 나 그거 정말 들어보고 싶어.”
“안 듣는 게 좋아.”
형은 왠지 시니컬하게 대답하고는 소주를 들이켰다. 취기가 눈망울에 모여왔다. 다리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들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나는 흔들거리는 턱을 괴고 그 불빛들을 보면서 좀 깔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사회주의니 갈아엎자니 자본주의 좆까라 어쩌구 하다가 결국 우리도 때 되면 다 월급 받고 차 사고 자식새끼 학원비 걱정하면서 살게 될 거 같애. 운동권 세대가 투쟁으로 뭘 이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지금이 천국인 건 아니잖아. 아직도 윗대가리 꼰대들이 쥐고 흔드는 세상인 건 다른 게 없는데. 정말 그 사람들은, 그들의 승리가 다라고 생각하는 걸까? 독재자를 쫓아내었으니 그들의 임무는 끝난 거야? 자유는 성취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어? 어쩌면 또 시간이 지나면 운동권이었던 애들이 다 늙어 갖고 또 그따위 짓거리 할 지도 모른다고. 근데 그러면 과연 그때 우리들이 데모를 할 수 있을까? 씨바, 우리 나라 애들이? 형이나 나 같이 소수 몇 명이나 한 스무 명 쯤 모여서 데모 하다가 개미 한 마리 잡는 것처럼 경찰한테 간단하게 끌려갈 거야. 우리 세대는 알고 보면 돈이면 그 어떤 세대들보다도 더 좋아할 걸. 아마, 돈 많은 사람은 독재가 가능할 지도 몰라. 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통령이 되려면 계엄령이니 머시기 그딴 건 필요 없고, 내가 대통령으로 올라가는 대신 전 국민에게 한 사람당 성인 삼천 만원 유아 이백만원 씩 계좌에 넣어주겠다, 이러면 전부 다 별 소리 없을지도 몰라. 우리는,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기성 세대에 비해 돈만 존나 쓰면서 컸다고. 뭐? 니네 만큼 행복한 세대도 없다, 배 안 곯지 돈 달라 하면 돈 받지? 좆까네, 우린 아마 가장 쓰레기 세대가 될 걸. 우린 돈과 상품의 노예가 될 거야.”
뇌가 알코올과 향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다혈질인데다가 진노에 가득 찬 내 혀는 제 굴러가고 싶은 대로 굴러갔다. 그러나 그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므로, 상대와 비슷한 속도로 술이 취해간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그도 착잡하게 입을 뗀다.
“그런 말 들으니까 존나 맥빠지긴 하는데 니 말대로 우린 우리끼리 자본주의 좆까라, 언젠간 때려부수리 저 철옹성을, 하면서 노브레인이나 삼청교육대 음악이나 듣고 부르고 머리나 흔들다가 그냥 늙을 지도 몰라. 한 놈은 좌파 학문적인 데 잘 파고들다 이러저러 하다보니 대학 교수, 좌파 학자, 씨바, 그놈의 학자! 또 한 놈은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가 자본주의 어쩌고를 외치다 결국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그렇게 증오하던 공장에 들어가서 평범한 노동자가 되고, 아, 그게 나쁘단 게 아니라 그러다 결국엔 가난을 신경 쓰며 평범하게 늙어가고 그렇게 또 새로이 계급이 생겨나고, 뭐 그렇게 세상에 길들여질지도 몰라. 내가 아까 말했지, 사실은 현실적으로 우리 엄마가 잘 한 걸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너무 화려한 세상에 살아. 그리고 그게 우리 세대의 비극의 시작이야. 뭐, 우리를 특이집단화 해서 정신적인 우월감을 느끼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같은 년놈들이 어디 많냐? 우리 세대가 청춘이니 젊음이니 하면 센치해지는 애들도 아니고.”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는 바보요, 늙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더 바보다.”
“다 좆까라 그래.”
그 때였다. 저 위 쪽에서 차가 한 대 서는가 싶더니 웬 날라리들이 대여섯 내렸다. 그러니까 그냥, 갈색 깻잎 머리에 복고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들과 쫄바지 정장 차림의 남자아이들이 아니라, MF 힙합 바지 혹은 촌스럽지 않은 진짜 돈백만원 되는 신사 정장을 한 남자 아이 들과 고급스런 옷차림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바로, 우리들이 자본주의의 똥을 핥아먹고 사는 것들이라 경멸하던, 강남의 졸부들의 자제들, 그들이었다.
“저것들이 타이밍까지 맞춰서 이 누추한 장소에 웬일들이지. 술맛 떨어지네.”
정민이 형이 집어넣었던 담뱃갑을 다시 꺼냈다. 강바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도익이 형네 아버지,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셨다며?”
나는 그들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형에게 말했다.
“그래. 보신탕 집 뒷구석에서 개 잡듯이 짤렸다고 도익이가 말하드라. 저 개잡것들, 여기서 버스 하나 타고 삼십분만 가면 누구는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쫄쫄 굶고 있는데, 지네 아빠들이 공금 횡령하고 국무처리도 안하고 경제 불황 닥치니까 허구헌날 노동자만 짜르라고 하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그냥 가난한 것들은 다 무시하고 지들끼리 고급스레 노는구나. 아주 지져버리고 싶어.”
나에게 만만치 않게 분노가 콧김으로 빠져나오고 있는 정민이 형이, 강가를 걷는 그들을 노려보며 담배꽁초를 저 밑으로 휙 던졌다. 고급한 정장을 빼 입은 남자 하나가 그 꽁초를 맞고 우리를 쳐다보았는데, 강북의 별 것 아닌 곤궁한 자녀들처럼 보였던지 옷을 툭툭 털고 제 품위 있는 친구들과 흘낏 흘낏 우리를 보며 뭐라고 하더니 담소를 나누며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가 무슨 사장으로 있다는 우리 반 여자아이가 문득 떠올랐다.
“형, 우리 반 그 년 있잖아. 저번에 나보고 뭐라는 줄 알어? ‘야, 언더주1)에서 랩하는 애들은 왜 나이키 안 입냐?'”
“미친년.”
“뭐라더라, 나한테 랩하면서 힙합 입을려면 나이키나 MF주2)로 빼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아주 웃기드라. 압구정동 가면 힙합 이쁘게 입는 애들 스타일은 다 안다고.”
“그건 진짜 개소리고. MF? 양현석과 지누션이 설령 음악실력이 있다 해도 쓰레기일 뿐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흑인 이미지를 상품화했을 뿐인.”
정민이 형의 옆얼굴을 무심코 쳐다보자 코에서 담배연기가 빠르게 뿜어져 나왔다.
“결국 모든 게 다 돈이 되는 거라구.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씨발, 근데 그게 누가 빠르게 만드냐? 우리가 세상을 빠르게 만드냐? 우리 엄마 아빠가? 이미 완벽히 망한 사회주의 사회보다야 자본주의 세상이 살기 좋지. 사실인데, 근데 기분이 존나 불안하고 더러워. 높은 곳에서 배를 두드리면서 안주해 있을 순 없어. 안 그럼 떨어져 버리잖아. 더 기를 쓰고 올라가야만 돼. 뭐, 이제 고등학생인 내가 아는 게 뭐 쥐뿔이나 되겠느냐만은 난 세상이 불안해. 나 있잖아, 전에 도익이 형네 집에 가봤었어. 근데 맘이 아프더라. 내가 존나 부자 같고 부르주아같애. 그 형 봉천동 달동네 살거든. 세상이 괜찮아 지는 것 같으면서도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애. 모르겠어. 우리도 크면 거의 반강제적으로 주식투자 같은 걸 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건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주식 투자 왕을 부러워하면서? 벤츠와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화려한 압구정 거리의 사치를 부러워하면서?”
“야, 씨바, 더 욕할 것도 없으니까 좆같은 소리 좀 그만해.”
그가 갑자기 저 밑 쪽으로 소주병을 내던졌다. 분노에 찬 절도 있는 손놀림답게, 검푸른 초록빛 소주병은 절벽에서 떨어져 납작하게 죽은 개구리처럼 퍽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조용히 주검이 되었다.
“씨발, 압구정동!”
갑자기 형이 벌떡 일어나면서 씹어뱉었다.
“뭐라고?”
“야, 기분 좆같은데 지금 당장 압구정동 가서 불지르고 오자.”
나는 잠시 어리벙벙했다. 하지만 알코올에 분노가 불이 붙어, 나는 형처럼 벌떡 일어섰다. 남은 건 행동뿐이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조금씩 흘낏거렸다. 아직 자정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얼굴이 벌써부터 벌개진 젊은 애 둘이 석유통 세 개를 들고 성난 눈빛으로 씩씩대며 지하철에 타고 있으니 젊은애들은 웬 싸이코인가 싶을 것이고 늙은이들은 가슴이 철렁 했을 것이다.
취기에 젖은 우리는 서로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냉소적으로 씨익 웃었다. 우리는 압구정 역에서 내려 신속하게 걸어갔다.
차도를 건너 정신없이 아무 쪽이나 향락가로 걸어가니 화려한 거리가 나타났다. 후끈한 열대야와 빛나는 간판들로 거리는 정신이 없었다. 길 양쪽에는 고급 브랜드 대리점들과 패스트푸드점, 차도 가에는 고급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전기로 불을 밝힌 거리는 대낮보다도 화려했다. 불야성을 이루기 위해 사용된 전깃줄들, 불빛들, 정말로 우리가 굳이 불을 지르지 않아도 그곳은 그곳 자체로써 벌써 불이 날 것만 같았다. 취한 나는 조금 멍해져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련된 여자들이 탄 차가 오더니 차를 길가에다 세웠다. 그녀들은 우아하게 차에서 내리고 차 문을 닫고 경쾌하게 문을 잠그고는 봄꽃들처럼 샤넬 향기를 풍기며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내 옆에는 검고 고급스럽게 빛이 나는 3500cc 짜리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묵직하게 서 있었다. 보통 차보다 석유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며, 돈 많고 힘있는 자들의 상징. 평소에도 저런 차를 싫어하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석유통의 뚜껑을 열었다. 지배자를 모시며, 돈을 쳐 바른 년놈들을 실어 나르며, 좆같은 한국 사회에서 자존심을 나타내는 저 차, 나는 그 차에다 어느새 석유를 철철 붓고 있었다. 정민이 형도 그런 나를 보더니, 석유통 뚜껑을 열고 손이 가는 대로 마구 석유를 붓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정민이 형은 나보다 술이 좀 센 편이니까 덜 취했는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차나 가게들에는 붓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없이 차에다 석유를 뿌리다가, 아가리를 바깥쪽으로 하고는 비틀거리며 석유통을 마구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위험한 기색을 못 느끼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석유가 마구 옷에 튀자 그제서야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 멀리서 어떤 남자가 “경찰 불러!”라고 외쳤다. 그러자, 저어 끝까지 길바닥에다 석유 두 통을 질질 뿌리던 정민이 형이 빈 석유통을 집어던지고 날쌔게 나에게 뛰어 왔다. 그러자 또 놀랍게도 “저 인간 잡아!”라고 누가 외쳤는데, 정민이 형은 내 손을 억세게 붙잡더니 몇 걸음 뛰어가다 멈추고는 주머니에서 성냥을 급히 꺼냈다. 그리고 성냥에 불을 탁 붙여서, 높이 들고 소리쳤다.
“야 이 개씨발것들, 자본주의 똥이나 받아먹고 사는 저질들아, 이거나 먹어라 씨바아알!”
그리고는 앞에다 성냥을 휙 던졌다. 그리고 취한 발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나를 끌고 전력으로 뛰었다. 뿌린 석유에 불이 확 붙더니 거리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외침은, 온 거리를 쩌렁 쩌렁 울리는, 통렬한 분노의 소리였다.
나는 절뚝이며 도망가다, 거리 모퉁이를 돌며 빠져나가기 직전에 고개를 돌려 흐릿한 눈으로 이제는 정말로 불타는 거리를 잠깐 보았다. 길가에는 간판들이 화려하게 반짝이며 불타고 있고, 길 한가운데에서는 진짜 불들이 사납게 날뛰고 있고, 사람들은 압구정동에서 처음 목격하는 초유의 사태에 놀라며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어이없게 만든 것은, 내가 공들여 석유를 뿌린 차가 전혀 불타지 않은 채, 성난 불빛을 더욱 더 야성적이고 야릇하게 반사하며 안전히 서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뿌린 석유와 연결되지 않았나 보다. 나는 발에 힘을 줘 형과 함께 전력으로 뛰어, 압구정 역 안으로 달려들어가 인파에 조용히 묻혔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한강으로,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뚝섬에 가서 또다시 강가에 철퍼덕 힘없이 주저앉았다. 둘 다 술은 거의 깨어 있었다.
“형, 우리 잘 한 거야?”
“몰라.”
우리는 왠지 비장함과 허탈함이 겹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내가 안타깝도록 예뻐하던 빛 고운 남색이었다.
“하늘 예쁘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래. 예쁘다.”
나는 하늘의 색을 음미하다가, 반짝이는 별들을 한번 보다가, 고개를 든 채 목을 비잉 한바퀴 돌렸다.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면서 다리 위의 자동차 불빛들과, 산과, 강과, 둔치의 시멘트와, 저 멀리 강변역 테크노마트의 꺼지지 않는 높은 건물의 간판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바로 하고 자세를 고쳐 앉고 갑자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거리는 불타지 않았을 거야.”
내 눈길에 제풀에 기가 죽은 듯 정민이 형이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바닥만 조금 타다 말았겠지.”
“그러게 말이야.”
이미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했던 나는 천연덕스럽게, 하지만 왠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강바람이 세게 불어 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지나갔다. 나는 다시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불을 지른다는 이벤트는 멋진 일이었어.”
“그래, 그랬겠지.”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정민이 형은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심하다는 듯 내뿜었다.
“아차, 형, 나 해치울 거 있어.”
문득 현실로 돌아온 내가 말했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냈다.
“형, 라이터 좀 줘 봐.”
“뭔데?”
“뭐기는. 방학 첫날에 태울 게 기말고사 성적표밖에 더 있냐.”
“그게 태운다고 해결이 되냐.”
형이 라이터를 맥없이 넘겨주었다. 나는 성적표에 조용히 불을 붙였다. 라이터의 불은 종이로 자리를 옮겨가더니 맹렬하고 화사하게 불타올랐다. 그리고는 게걸스럽게 성적표를 해치우더니 곧 허무하고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검은 주검으로 변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초라한 잿빛 종이조각에서는 마지막 남은 불씨들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몸을 뒤틀고 있었다. 어떤 불빛이든 불빛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색깔이었지만 왠지 쓸쓸했다.
“이제 방학이니까, 이번 방학에는 수학 보충을 좀 해놔야겠어.”
나는 손을 탁탁 털고 말했다.
“그래. 난 계절 학기 과목 추가로 들어야 돼.”
“음. 모범적인걸?.”
“니가 먼저 시작했잖아.”
“알았어.”
나는 바람결에 코끝을 스치는 그의 담배 연기를 맡으며 멍하니 강 건너를 바라보다가, 문득 형에게 말했다.
“형, 나 괜찮은 소재 하나 떠올랐어.”
“그래, 뭔가, 우리의 국문학도 김군?”
나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압구정동에 불을 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