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카메라 이야기…글쓴이 ‘닮산 김종욱’

멋진글이라 제 홈에 소장하고 싶어서 이렇게 옮겨 놓습니다.

이 원고는 ‘닮산 김종욱’과 ‘천리안 사진동(pcman)의 지적 재산이며 ‘공개’된 것 입니다. 다른 곳으로 글을 옮기거나 자신의 글에 인용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글쓴이 ‘닮산 김종욱’과 원고의 출처 ‘천리안 사진동 (go pcman)’을 명확하게 밝힌 경우에 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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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소개] 비싼 카메라 이야기
글쓴이 : 닮산 김종욱     출 처  : 천리안 사진동(go pcman)

1. 비싼 카메라는 왜 비싼가?

이책의 주제는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하여 필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노출과 현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화 작업에 필요한 제반 기술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기에 대한 이 야기는 가급적 피하려고 하였다.   사진기와 렌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으면 쉽게 책 한 권이 넘는 분량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그런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원고 만큼은 이 책에 넣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비싼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인데 따지고 보 면 사진을 배우게 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이며,  넘기가 쉽지 않은 고비가 바로 “비싸고 좋은  고급 기종의 카메라를 사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는 고급 병에 걸리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들뜬 호기심과 보물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순박한 열정으로 사진에 뛰어 들었다가 그 정력을 카메라 섭렵에 탕진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게 되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요즈음 허영깨나 부린다는 강남의 돈 많은 아줌마들이 밍크 모피로 된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장에 나가는 것처럼 말리기도  지극히 힘들다.    이와 같은 기계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나 경외 감이 사라진 연후에 야 진정으로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고뇌가 가능한 것이니 사진의 세계는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 앞장에 비싼 카메라가 왜 비싼지에 관하여 이야기 하게 된 것이다.

1.  띠융~~  ‘라이카’가 그렇게 좋은 것이어유?

때로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도구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위세를 떨쳐 보이기 위하여 선택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물론 ‘비싼 카메라’를 사는 것이다.   여기서 비싸다는 기준은 그 가격이 단순히 얼마다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쉽게 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싸야 비싼 것이다.

이렇게 비싼 카메라도 상업적으로는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있다.  고객을 확보하고 주문을 따내야 하는 상업 사진가 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가 장비를 고객들에게 슬쩍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스튜디오가 그런 비싼 물건을 두고 운영할 만큼 붐비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또 자신이 그만큼 역량 있는 작가라는 선입견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크던 작던 자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기초적인 상술인데 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인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아마추어들도 모자라는 자신의 역량을 돈으로 감춰 보려는 경향이 있다.

비싼 카메라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전설도 필요하다.   특히 렌즈에 대한 전설 없이는 비싼 카메라가 될 수 없다.  누구나 다 동의 하리라 믿지만, 렌즈의 성능은 시원찮은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소문이 난다면 시장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탐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카메라를 만드는 업자들은 이 전설 부분에 대하여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전설은 업자가 아니라 그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카메라 중에 ‘렌즈가 좋아서 엄청나게 비싸 마땅한’ 카메라들을 소개해 보면 대형 기종(4X5)중에 린호프 테크니카(Linhof Technika), 중형에 ‘롤라이후렉스(Rolleiflex)’와 ‘핫셀브라드(Hasselbrad)’ 35미리에 ‘라이카(Leica)’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격은 린호프가 400만원 정도, 롤라이가 350만원, 핫셀브라드가 250만원,라이카가 250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교환 렌즈를 몇 개 사서 구색을 맞추려면 대략 500만원에서 7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사실 요즘 한국 사람은 이정도 물건을 살 재력쯤이야 있다.
그러나 이것이 승용차나 뭐 그런 것이 아니고 사진기인데 이 정도를 가볍게 지불할 사람이 많이 있을까?   아무튼 이 유명한 사진기들에 대한 품평을 좀 해보기로 하자.   그러나 먼저 비싼 카메라가 왜 비싼지 예기를 끝내야 겠다.

(그림1.  라이카, 롤라이, 핫셀브라드, 린호프 사진)

비싼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들이 자기 카메라에 이상한 전설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집안에 버티고 있는 ‘마나님’때문 이다.   아무리 사진을 좋아 한다고 해도 승용차 한대를 살 수 있는 돈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 버린다면 인상 쓰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이 산 그 특별한 사진기에는 다른 어떤 기종도 흉내낼 수 없는 미지의 기능이,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그래서 그만한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동료들에게 “이게 보통 카메라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지만  돈이 남아서 그냥 한번 사봤어!” 라고 예기할 수 있는 배짱 두둑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구매 결정이 합리적인 근거 하에 이루어 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독일의 롤라이 카메라를 인수한 삼성 카메라도 겁나게 비싼 카메라를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창원이나 구미쯤에 조그마한 조립 라인을 하나 만들고 포항제철에서 나오는 제일 좋은 특수강을 사용하여 수작업에 가깝게 조립을 하는 것이다.  렌즈는 슈나이더(Schneider KREUZNACH)의 제노타(Xenotar) 시리즈를 붙이면 된다.    그리고 한 300만원쯤 되는 가격표를 붙여서 시장에 내 놓으면 잘 팔릴지도 모르겠다.   비싼 카메라도 허영심을 채워 주는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근거가 약간 불확실한(?) 학설도 있다.

현재 롤라이의 주력 기종은 중형 6008이니까 라이카 M6와 콘탁스 G2의 중간쯤 되는 형태로 6X7사이즈의 기종을 만드는 거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비싼 ‘삼성표’ 카메라를 일단 내놓고 나면 주변에 있는 장비들, 즉 기존에 팔리고 있는 35미리 카메라류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많이 올라가게 될 것이며 ‘삼성표’에 대하여 고급 브랜드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어 훗날 고급 기종의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는데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다.
마케팅 측면에서 본다면 롤라이 6008과 핫셀브라드가 이미 차지하고 있는 6X6사이즈의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것은 거의 승산이 없기 때문에 6X7사이즈의 시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6X7사진기 시장은 팬탁스67, 마미야 RZ, 마미야7, 브로니카GX등이 어느 것도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혼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라이카에 대한 예기부터 해보자.

제일 먼저 라이카가 나오는 이유는 비싸기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얼토당토 않은 전설이 제일 많은 기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이 라이카는 너무 비싸다.  중형이나 대형 중에 있는 비싼 기종들은 그래도 카메라가 그만큼 크고 나름대로 주장할만한 꺼리가 있지만 겨우 35미리에 불과한 이 라이카가 이렇게 비싸서야 말이나 되겠는가?
라이카에 대한 전설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인데 ‘렌즈의 성능이 환상적이다.’  ‘중형 카메라를 쓰느니 라이카를 쓰면 중형과 같은 성능,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전지로 확대해도 입자가 보이지 않는다.’  ‘기계가 정교하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 등등 이다.

내가 제일 처음 써본 라이카는 R3이다.  렌즈는 주미크론(Summicron) f2.0이었다.  사실 라이카에 대한 황당한 예기들을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차이가 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X8의 루페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다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차이를 모르겠다.  뭐 좀더 샤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자가 작은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11X14로 확대한 사진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도대체 펜탁스(Pentax)나 니콘(Nikon)으로 찍은 사진과 어디가 틀리 단 예긴가?   안광이 지배를 철하도록 필림을 들여다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음… 아마도 내가 사력이 짧아 라이카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모양이구먼…좀 더 써 보면 알겠지….”  

그래서 처음엔 라이카가 얼마나 좋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역시 라이카는 뭔가 틀려..’ 라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들도 그런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니까.   그런데 사진을 아무리 더 찍어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뭔가 이건 아닌데…..’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솔직히 콘탁스(Contax) 카메라의 플라나(Planar) 렌즈가 헐 씬 더 좋아 보였다.지금은 R3에서 M4를 거쳐 라이카 IIIf를 쓰고 있다.   카메라 연대기로 보면 시대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 라이카 IIIf는 내가 정말 아끼면서도 35미리 사진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주력 사진기이지만 이제 와서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진기일 뿐이고 성능도 그저 그렇지만 작고 단단한 몸체에 휴대성이 좋고 이미 손에 익어 다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라이카 R7 과 M3)
(라이카 IIIf 와 렌즈군.   내가 지금도 애용하고 있는 기종이다.)
(라이카로 찍은 사진)

아무튼 그래서 라이카를 삼신 할머니처럼 믿고 있는 고수들에게 도대체 어디가 차이가 나는 것인지 물어 보기 시작했다.    제일 흔한 대답은 11X14정도론 차이가 나지 않고 전지로 크게 확대를 해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미 11X14에서도 입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필림이 더 크게 확대하면 선명해 질 거라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어서 실재로 더 확대를 해볼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더 웃기는 경우는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도 좋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자기가 촬영한 필림을 자세히 보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내가 실제로 사용해본 제일 값싼 중형 사진기인 야시카(Yashica) TLR로 촬영한 사진 보다 라이카의 사진은 헐 씬 못하다.   네가티브 면적이 4배정도 차이가 나는데 사진의 선명도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건 고등 학생과 초등 학생이 싸우는 권투 시합 같은 거다.   처음부터 체급이 맞지 않는 것이다.    35미리는 35미리끼리, 중형은 중형끼리 비교를 해야 공정한 것이고 또 35미리와 중형 카메라는 각자 고유한 쓰임새가 있는 것이므로 서로를 비교해서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 아니다를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중형 필림의 면적이 35미리 보다 4배 넓다는 의미는 같은 성능의 렌즈를 사용하였을 때 사진이 4배 더 선명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데 라이카로 찍은 사진이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면 라이카(Leica) 렌즈는 중형 카메라의 렌즈보다 4배 이상 더 선명하단 말인가?     일반적인 렌즈의 해상력이 60lpm(lines-per -millimeter) 정도 인데 라이카의 렌즈는 최소한 240lpm을 넘는다는 말인가?    오늘날의 렌즈는물리적인 한계에 가까운 해상력을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어떻게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고240lpm을 낸단 말인가?    중형 야시카는 그렇다 치고 중형 핫셀브라드나 롤라이프렉스도 최고급 렌즈를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최고급 렌즈보다도 더 최최고급이란 말인가?

라이카의 사진은 다른 35미리 사진기와 비교해 보면 사실 특별히 흠 잡을 데는 없다.  적어도 니콘이나 캐논 렌즈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더 떨어질 것도, 더 나을 것도 없다.그러나 중형 카메라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로 어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 계통에서는 광신도에 가깝다.     ‘믿으면 곧 보이리라’는 식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의 눈에는 거친 입자도 선예한 윤곽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35미리 와 중형 필림의 크기 비교)          

이왕 시작한 김에 라이카 광신도들을 좀더 몰아 붙이기로 작정하였다. 니콘과 라이카로 찍어놓은 사진을 몇 장 골라서 테스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카 렌즈가 그렇게 환상적이고 다른 렌즈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니까, 그 사진들 중에서 라이카 렌즈로 찍은 것과 니콘 렌즈로 찍은 것을 가려내 보라고 내밀었다.   이 짖궂은 테스트는 사실 아무도 호응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는데 내가 사진을 내놓으면 일부는 질겁을 하고 급히 전화할 곳이 있다는 둥… 자리를 피하고 일부는 마치 계룡산 도사 같은 표정으로 그런 차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거라 대답했다.   글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차이면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사진은 시각 예술이 아니던가?

사실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사람 눈에만 보일 터이니 ‘이야기 속으로’ 같은데 나오는 ‘귀신 붙은 사진기’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접대하는 자기 만족’일 뿐이다.   좀 짧은 말로 줄이면 ‘셀프 접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무었을 스스로 접대하는고 하니 자신의 눈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 라도 구분해 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추켜 세운다는 예기다.

(라이카와 니콘)
(롤라이와 야시카 필림, 부분 확대)
(촬영에 사용된 주미타 렌즈, 니콜 렌즈, 텟사 렌즈, 플라나 렌즈, 야시논 렌즈)

라이카의 신화는 사실 라이카 사용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예기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광학 엔지니어로서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본사가 통칭 실리콘 벨리(Silicon Valley)라고 불리우는 산호세(San Jose, California)에 있는 KLA-Tencor사인데 반도체 장비는 특성상 최첨단의 광학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하게 되어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도 사진을 만드는 과정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인데 그대신 반도체 공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선(회로 패턴)을 광학적으로 구현해 내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해상력과 광학적 평면성(Optical flatness : 화면의 주변부에 촛점 이동이나 왜곡이 생기지 않는 것)를 요구하는 분야이다.  이 정도의 극한에 가까운 성능을 요구하는 분야는 인공 위성의 감시 카메라말고는 없을 것이다.  

반도체라고 하면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세계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사진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개요를 잠깐 살펴 보자.   먼저 웨이퍼(Wafer)라고 불리우는 실리콘 단결정 원반 위에 감광 물질을 칠하여 ‘인화지’에 해당 하는 것을 만든다.  그 다음으로 회로의 패턴이 그려져 있는 마스크(Mask; 네가티브에 해당)를 스테퍼(Stepper; 확대기에 해당)에 넣어 노광을 주고 트랙(Track; 45분 현상소의 자동 현상기 같은 기계)으로 현상과 정착을 하여 사진 공정(Photo process)을 마치게 된다.   사용되는 장비와 재료는 다르지만 그 원리는 일반적인 사진과 완전히 동일한 과정이다.  

사진        인화지                 네가티브,             확대기 노광         현상,정착

웨이퍼     PR 코팅(인화지)    마스크(네가티브)    스테퍼 노광         트랙 현상,정착

물론 메모리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진 공정 이외에도 식각(Etching), 확산(Diffusion), 박막(Thin film) …
등등의 추가적인 공정을 더 거치기는 하지만 사진 공정에서 얼마나 미세한 패턴을 그려 줄 수 있느냐에 따라 회로의 집적도가 달라져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한국의 모 기업, 세계 최초로 256M 메모리 칩의 시제품 개발…..”등등의 기사가 실릴 수 있는 것이니 실로 사진 공정이야 말로 반도체 기술 경쟁의 핵심을 이루는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판되는 16메가 메모리 칩을 생산하는데 요구되는 최소 선폭은 0.3um(um은 10의 마이너스 6제곱)이고 64메가 메모리 칩 이라면 0.2um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에 사용되는 광학 렌즈들은 렌즈 제조업체들의 최신 기술이 총 망라 되어 있고 또 반도체의 사진 공정에 쓰이는 장비들은 정밀 기계 공학의 상징인 카메라 제조업체에서 생산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스테퍼(Stepper: 자동 패턴 기록 장치이며 한 대당 가격이 200만불 정도 한다)같은 것은 하나의생산 라인에 40대 에서 50대 가량 들어가는 고가의 장비인데 일본의 니콘(Nikon)사와 캐논(Cannon)사가 전세계 시장을 양분하여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는데 왕년에 독일이 카메라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을 당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라이카와 콘탁스의 싸움은 그 후 카메라 시장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라이카의 복제품을 만들던 캐논과 콘탁스를 그대로 모방한 니콘과의 각축전으로 변했는데 짜이스(Zeiss Ikon;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의 렌즈 기술을 추종한 니콘이 단연코 우위로 나서 일본의 고급 카메라 기종이라고 하면 니콘 F(Nikon F)시리즈 카메라를 가리키는 말처럼 되어 버렸다.

이런 경향은 스테퍼 시장에도 그대로 이어져 렌즈의 성능이 시원찮은 캐논은 지리멸멸하며 시장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몰렸는데 여기에 한국이 새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서 변수가 생겼던 것이다.  

당시의 스테퍼도 니콘이 독점하다시피 하여 그 횡포와 거만이 대단했었다.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란, 이런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법이라 캐논에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으로 대량 발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반도체 회사들은 같은 가격에 성능이 더 우수한 니콘만 사용하고 있는 터 였는데 ‘한다면 하는’ 한국 사람들이 발주를 내자 캐논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한국 시장에 달라 붙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니콘도 비슷하게 파격적인 조건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만년 2위에서 벗어나려는 캐논은 눈물겨운 연구 정진으로 성능을 개선해 나갔고 그 사이에 한국이 반도체 생산에서 세계 제일의 위치가 되자 이제 당당히 니콘과 어깨를 겨루는 처지가 된 것이다.    스테퍼 한대의 가격이 500불짜리 카메라 4~5천대의 가격과 같은 정도니까 이런 장비를 한번에 40~50대씩 판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엄청난 시장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캐논은 기사회생 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EOS기종을 들고 나와서 니콘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으니 그 이면에는 한국인의 다소 우악스러운 고집이 작용하였던 것이다.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스테퍼 같은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광학적, 기계적 기술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니콘과 캐논의 이름만 들어도 짐작이 가겠지만 카메라와 스테퍼는 사촌 격으로 다같이 정밀 기계 공학과 광학 기술의 정수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한국의 광학 산업과 정밀 기계 분야는 일본에 비하면 아직 수준이 많이 뒤떨어지는데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카메라 회사에 부품과 주변 기술은 줄지언정 핵심 기술을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결국 우리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는 없는 일인데 아까 삼성 카메라가 롤라이의 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비싼 카메라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한 것도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라 다 배워두면 두고 두고 쓸모가 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KLA-Tencor에서 사용하는 광학 시스템은 라이츠(Leitz; 라이카 카메라의 메이커)사의 렌즈들과 미국 멜리스 그리오트(Melles-Griot)사의 렌즈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학 엔지니어로 일하려면 당연히 라이츠 렌즈군의 광학적 특성이나 스펙(spec: 사양)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 같은 찍새가 라이츠의 사진기용 렌즈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라이츠사의 기술 자료를 아무리 훌터 보아도 라이카 렌즈의 해상력이 다른 메이커의 렌즈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나도 깜짝 놀란 사실이지만) 라이카 렌즈들은 구면 수차를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약간 남겨 두어 해상력을 의도적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3차원의 피사체를 2차원의 인화지에 재현하는 사진기 렌즈에서 해상력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입체감 있는 묘사를 해주기 위해서 이다.   또한 라이츠사는 사진을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렌즈의 해상력을 올리는 대신 콘트라스트를 올리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  렌즈의 콘트라스트가 높아지면 피사체의 윤곽이 더 뚜렷하게 구분되어 보이게(즉 밝고 어두운 차이가 크다) 되는데 이것은 렌즈가 더 세밀하게 묘사(해상력이 높다)할 수 있다는 것과는 틀린 예기이다.

결론적으로 라이츠 렌즈군은 구면 수차가 남아 있어 해상력은 생각처럼 높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의 흐려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높은 콘트라스트의 윤곽선으로 보상하여 선명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졌다는 예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이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묘사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라이카 렌즈의 맛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계룡산 도사급의 촌평이 뭔가 예언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쩝… 내가 짧은 안목으로 도사 앞에서 발칙하게 까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라이카 렌즈로 찍은 사진과 다른 렌즈로 찍은 사진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지 못하였다.  도사는??)

어쨌든 이런 독특한 묘사 능력은 렌즈의 사양을 토대로 한 추정일 뿐이고 실재로 느끼기는 다소 힘들다.   그 이유는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묘사력이 인화지 위에 재현될 정도로 구면 수차를 많이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은 과학적 데이타와 기술 자료를 무작정 신봉하는 시대라 구면 수차를 많이 넣어 해상력이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떨어지는 렌즈를 만든다면 대번에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된다. 외국의 여러 사진 잡지나 인터넷의 사진 관련 싸이트를 보면 온갖 렌즈에 대한 꼼꼼한 테스트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뭐가 좋은 건지 알기 힘들게 되어 있고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은 것이다는 것을 이렇게 어렵게 예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테스트들은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개인의 취향이나 의견 같은 주관적인 것은 무시하고 ‘해상력 테스트’나 ‘MTF테스트’등의 객관적 데이타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니 라이츠사가 해상력을 낮게 잡아 렌즈를 디자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오래된 기종에 붙어 있는 구형 렌즈들은 라이카 고유의 특징이 강하다.   라이츠의 스크류 마운트(Screw Mount) 카메라는 IIIG기종을 끝으로 1956년에 생산이 중단 되었는데 당시에 35미리 카메라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짜이스 이콘(Zeiss Ikon)’사의 콘탁스(Contax) III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라이카 IIIf나 IIIG에 사용되었던 주마(Summar), 주미타(Summitar), 엘마(Elmar) 렌즈들은 구면 수차로 인하여 해상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한 흐려짐이 있어 다른 렌즈(특히 면도날로 자른 듯이 선명한 묘사를 하는 짜이스의 렌즈)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런 흐려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생산되는 라이츠 렌즈들은 이런 것을 잘 느낄 수 없다.  
당시의 짜이스 렌즈의 선명한 묘사는 ‘Bite look'(깨물어 뜯은 자국처럼 선명하다는 의미)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 였는데 짜이스의 텟사(Tessar)를 복사한 라이츠의 엘마(Elmar) 렌즈나 플라나(Planar)를 복제한 주마(Summar) 렌즈는 원조 렌즈와 같은 성능을 도저히 낼 수가 없었고 라이츠는 렌즈의 해상력이 아닌 분위기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콘탁스는 성능이 뛰어난 만큼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아 라이카(Leica) 기종의 1.5배 정도 나가는 그야말로 최고급 기종이었는데 불행히도 (라이츠로서는 다행히도) 콘탁스III의 바디는 라이카 IIIf나 그 후의 M3만큼 튼튼하지는 못하였다.  
그 주요 원인은 샷타였는데, 라이카의 샷타가 헝겊으로 된 막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방식인데 비하여 콘탁스의 샷타는 얇은 금속 막을 수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비록 콘탁스의 샷타 방식이 더 우수한 점이 많아서 오늘날 사용되는 포칼플레인 샷타(Focal plane shutter)의 원조가 되기는 했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 이런 금속 막 샷타를 정교하게 동작시키는데는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수리로 생업을 꾸려가던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콘탁스가 단연코 좋은 제품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콘탁스의 샷타 문제는 2차 대전 후에 개량형 IIIA가 나오면서 해결 되었다)      

한편 콘탁스는 필림을 교환하기 쉽도록 밑판과 뒤판이 같이 떨어지게 되어 있으나 라이카III기종은 바닥판만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이 좁은 틈으로 필림을 장전하려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요즘에 나오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번거로운 것이 바로 ‘구형 라이카에 필림 넣기’인데 이런 사용자들의 희생 덕분에 라이카는 몸통 전체를 다이케스트(Die Cast)로 주조 할 수 있게 되어서 라이카 바디는 총알도 뚫기 힘들 정도로 튼튼하다는 말이 엄연한 사실로 되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III기종에 대한 예기이고 밑판과는 별도로 뒷판도 열수 있게 만든 M기종은 역시 단단한 편에 속하지만 일본 미놀타사(Minolta)에서 미놀타XE-7이나 XD-11을 껍데기만 바꿔 라이카 R3, R4, R5.. 등등으로 이름을 붙여 생산한 기종에 이르면 튼튼하다는 말도 남의 일이 되고 만다.  

(라이카 렌즈군, 주마, 주미타, 엘마 렌즈 디자인)
(콘탁스 렌즈군, 텟사, 조나 렌즈 디자인)
(콘탁스의 필림 장전과 라이카의 필림 장전, 샷타막의 구조)
(III 기종의 차이 , 필림넣는 방법)

그러면 마지막으로 라이카에 대한 황당 중의 황당,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뻥구라의 지존을 소개하자면…. ‘라이카의 렌즈는 시각 장애인이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소문인즉슨 라이츠사는 기계적인 가공도 믿지 못하여 손끝의 감각이 크리넥스 홑 겹을 두 쪽으로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시각 장애인을 고용하여 렌즈를 쓱 더듬어보고 잘 깎였는지 아닌지를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예기를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한 손으로는 아끼는 라이카를 쓰다듬어 가면서) 천연덕스럽게 예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샤머니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무속의 경지에 이르는 발상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동양적인 것인데 서구인들이란 (특히 독일인들은 더욱 더) 확고한 물리적인 법칙과 과학적인 측정 기술을 저희 조상들의 음덕보다 헐 씬 더 신뢰하는 인종들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렌즈를 만져보고서 판정한다는 것은 아마도 ‘렌즈 만드는 것’과 ‘고려 청자 만드는 것’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동양인이 지어낸 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쨌든 라이카는 하나쯤 가져 볼만한 사진기이긴 하다.   잘 만들어진 기계이며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R기종은 이 말에서 빼고 싶다) 또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라이카라는이름은 사진의 역사에서, 그리고 카메라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카메라를 소유한 덕분에 덩달아 부러움의 눈초리를 받게 된들 그리 나쁠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환상적인 작품이 우수한 렌즈에 힘입어 쉽게 만들어 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 라이카 같은 비싼 카메라를 사고 싶어 한다면 그건 정말 말리고 싶다. 사실은 생각과는 반대로 사진을 배우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고가의 장비를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보통은 사진기의 광택을 보존하느라 가죽 케이스에 꼭꼭 싸서 여인네가 은장도 품고 다니듯 가지고 다니는데 심지어 샷타에 무리가 갈까 봐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도 있다.   렌즈도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어차피 사치품은 다 그런 거지만) 이것 저것 필요한 대로 사서 쓸 수가 없다.    서너 달 동안 이 카메라를 아끼느라 노심초사하다가 아예 사진에 대한 흥미가 피곤으로 변해 버리는 사람도 보았다.   이렇게 되고 나서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거나 잘 찍게 되는 사람을 나는 본적이 없다.  진짜루~.

사진기가 본래의 목적에 종사하지 못하고 위세를 떨치는 용도로 전용되면 그 사람의 사진 세계도 거의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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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롤라이와 핫셀; 영원한 맛수

카메라 이야기를 할 때 ‘롤라이프렉스(Rolleiflex)’와 ‘핫셀브라드(Hasselbrad)’는 같이 묶어서 예기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중에서 로미오만 예기하고 줄리엣은 빼놓는 것과 같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두 기종은 중형 카메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서로가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두 기종의 역사가 곧 중형 카메라의 역사나 마찬가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롤라이와 핫셀브라드의 공통점인 ‘칼 짜이스(Carl Zeiss)’렌즈에 대해서 언급하고 나면 카메라의 역사에 대하여 어지간한 부분은 다 다루게 되는 것이다.   롤라이가 그 명성을 얻은 것이 상당 부분은 짜이스 렌즈에서 기인한 것인데 그 롤라이를 시장에서 몰아낸 핫셀브라드도 같은 짜이스 렌즈를 사용하여 명성을 얻었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칼한 역사이다.

이 두 기종도 어지간히 비싼 카메라이다.   그러나 사람을 은근히 실망시키는 라이카와는 달리 돈을 들인 만큼의 값어치를 다소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두 기종이 다 120필림을 사용하는 중형 카메라이고 35미리 카메라에 비해 필림 면적이 4배 정도 넓기 때문에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나는 사진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11X14정도로 확대한 사진에서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35미리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그 선명도나 깨끗한 묘사력에서 차이가 많이 나고 그것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중형끼리 비교한다면, 예를 들어 롤라이로 찍은 사진과 핫셀브라드로 찍은 사진을 비교한다면 서로 구분 할 수가 없겠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사진가 들이 35미리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하고 또 거기에 눈이 익어 있기 때문에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처음 보면 그 깨끗한 묘사력에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아직 모자라는 부분도 많이 있다.  중형 사진은 인물이나 상품 같이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피사체를 찍은 사진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풍경 사진과 같이 복잡 다단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피사체에는 아직 해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35미리로 찍은 풍경 사진 보다야 잘 나오기는 하지만 16X20이상으로  확대된 사진에서는 거친 입자가 눈에 띄게 된다.   풍경 사진에서의 진정한 선명도는 4X5와 같은 대형 카메라를 써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35미리에서 중형으로 바뀔 때 필림이 4배 정도 넓어진다고 하였는데, 중형에서 다시 대형(4X5)으로 넘어갈 때 필림이 5배 정도 더 넓어진다.   그래서 중형 사진과 대형 사진을 비교해 보면 역시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상업 사진가 들이 중형 카메라를 애용하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상업적 용도에 쓰이는 사진은 사실은 크게 확대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잡지의 상품 광고 나 카타로그 같은데 쓰이는 사진은 커봐야 8X10정도 이고 간혹 지하철 같은데 걸려 있는 큰 사진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그래도 상업 사진은 11X14이상 커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정도 크기의 확대라면 중형 사진기로도 필요한 선명함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진정으로 높은 해상력과 깨끗한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요구는 사실은 아마츄어 사진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아마츄어는 사진의 용도가 작품 전시회를 하는 정도로 한정 되어 있는데 액자에 넣어서 걸어놓은 사진이 관람자에게 ‘예술 작품’으로 비쳐지려면 거의 한계점에 다다를 정도의 품질 높은 인화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분야에 따라 이런 기준은 달라질 수 있는데 기록 사진(다큐멘타리 사진) 같은 경우라면 쓰기 좋은 35미리 AF카메라가 최고겠지만 풍경이나 건축 사진을 찍을 때에는 중형으로도 필요한 만큼의 선명함이 얻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사진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기록 사진 분야와는 달리 순수 예술 분야인 풍경 사진에서는 극단적으로 추구된 디테일이나 톤의 변화 같은 것도 감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또 건축 사진에서는 다른 종류의 카메라에는 없는 무브먼트(Movement)가 필요하기 때문에,  4X5정도의 대형 카메라가 이 분야의 표준 장비나 마찬가지로 되게 된다.   그래서 중형 카메라는 사진의 품질과 작업 속도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상업 사진가에게 알맞은 장비이고 극단적인 사진의 질을 추구하는 아마츄어에겐 대형 카메라가 맞는 장비이다.

롤라이나 핫셀의 가격은 대부분의 아마츄어에게는 다소 벅찬 수준인데 큰맘 먹고 사고 나서도 ’35미리 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원하는 만큼은 안되는’ 어중간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쓸만한 대형 카메라(‘다찌하라’나 ‘위스타’ 기종)와 렌즈를 몇 개 구하는 가격이 중형 카메라 바디 값보다도 저렴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중형 카메라를 그리 쉽게 생각할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중형 카메라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었 때문에 그 기종을 사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왠지 멋있어 보이니까….’ 라면 뭐 할말이 없지만 ‘선명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선명도를 자신이 원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중형 카메라는 이름 그대로 중간 정도의 선명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을 원하는 사람에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사진의 선명도보다 그 내용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은 빠르게 조작 할 수 있는 35미리 카메라가 유리하다.

앞서 라이카 편에서도 예기하였지만 이런 고가 장비를 구입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과도하게 비싼 카메라를 가지면 많은 경우에 사진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사진기 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분야에서는 이 고가의 중형 카메라가 제구실을 다해 준다고는 하지만 또 어떤 분야에선 극력 피해야 할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는 롤라이후렉스SL66E와 핫셀브라드 500CM에 대한 품평을 할 예정인데 먼저 역사를 조금 살펴보도록 하자.

(롤라이 MX Automat,  발매년도, Xenar렌즈, Automat의 자동 필림감기; Automat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여 자동 노출이나 자동 촛점 같은 기능을 이 카메라에 기대해서는 안된다.  실제로는 노출계조차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기계식 카메라인 것이다.이 이름은 중형 필림의 첫 부분을 자동으로 감지하여 내부의 톱니바퀴를 셋팅해주는 기능에서 따온 것이다.  다른 중형 카메라에서는 필림의 화살표를 카메라 내부에 있는 표시와 맞추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없다.   그 당시 기술로는 아주 훌륭한 디자인이다.)
(슈나이더 제나(Xenar) 렌즈)
(SL66E의 필림 필러, 66SE부터는 사라짐)
(롤라이 이안의 텟사 렌즈, 필터 세트)

롤라이가 1928년에 최초의 중형 TLR(Twin Lens Reflex: 이안 반사식)카메라를 발매하자 즉각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다.   아담한 덩치에 비하여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성능을 지녔고 기계의 신뢰성도 높아서 전문가가 요구하는 ‘험악한 환경에서의 학대’를 무리 없이 잘 견뎌 내었기 때문이었다.   롤라이는 ‘칼 짜이스’ 광학의 명품 렌즈 ‘텟사(Tessar)’를 장착 하였는데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품질을 가진 렌즈였다.   아니다! 짜이스의 텟사는 지금까지도 생산되면서 여러 종류의 고급 카메라에 사용되고 있으니 그 당시의 텟사 렌즈가 이미 현대적인 기준에 맞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롤라이는 곧 ‘독일제 카메라 = 최고급 카메라’라는 등식을 수립하였는데 그 명성의 반은 텟사 덕분이다.  

오늘날에는 렌즈 만드는 기술이 평준화 되어서 (60년대 이후 컴퓨터를 이용하여 디자인하고 수치제어 공작기계(NC Machine)으로 가공을 할 수 있게 되자) 짜이스가 렌즈 분야에서 가지고 있었던 독점적인 지위와 명성도 많이 퇴색하였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원들과 수학자들이 모여 200개의 연립 미분 방정식을 3년여에 걸쳐 풀면서 렌즈를 디자인 하던 그 당시에는 짜이스 렌즈의 명성을 따라갈 자가 없었다.

짜이스는 사실상 렌즈를 만드는 유명 업체 중의 하나가 아니라 렌즈의 역사 그 자체이다.  짜이스의 아베(Abbe)박사는 1886년 렌즈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유리 특성을 규명하여 아베 상수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것이 물리책의 광학편에 나오는 바로 그 ‘아베 상수’다.   또 서로 다른 매질을 투과하는 빛이 어떤 경로를 취하게 되는 가를 규명하여 ‘아베의 공식’을 만들었다.        

(아베의 공식, 아베의 년대기)

이 간단해 보이지만 천재적인 영감이 번득이는 방정식이 나옴으로써 렌즈를 만드는 일이 예술의 세계에서 공학의 세계로 나왔다.   그 이전까지는 광학적 성질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장인들의 손재주와 경험,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감에 의하여 제작되었던 것이다. (이 때는 렌즈 만드는 일과 고려 청자 만드는 일이 비슷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짜이스는 아베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유리에 바륨(Ba)이 함유된 고 굴절 유리를 만들었고 독일 예나(Jena)에 있는 짜이스 공장에서 나온 이 유리를 렌즈 디자이너들은 예나 글라스(Jena glass)라 불렀다. 이 예나 글라스는 짜이스 광학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다른 렌즈 업체에도 공급되었기 때문에 렌즈 디자이너들은 비로서 유리창이나 만들어야 할 유리가 아니라 균일한 품질과 높은 굴절율을 가진 ‘광학 유리(Optical glass)’로 렌즈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적인 렌즈 디자인은 사실 단 3명의 천재적인 디자이너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업적을 세운 사람이 짜이스의 루돌프(Rudolph) 박사이다.   루돌프는 먼저 1896년에 플라나(planar) 렌즈를 설계하였는데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이 렌즈가 실제로는 쓸모 없는 것이라고 판명되었다.   렌즈 코팅 기술이 없었던 당시에는 플라나 디자인(4군 6매)이 가지고 있었던 표면 반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플라나 렌즈는 1950년대 렌즈 코팅 기술이 확립된 후 시장에 나오게 된다.    
1903년에 루돌프는 다시 텟사(Tessar) 렌즈를 디자인 하였다.   이 렌즈는 3군 4매로 구성되어 플라나 보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고 코팅 없이도 훌륭한 성능을 내주는 완벽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20세기의 전반부 즉 1950년 까지는 텟사가, 그 이후는 플라나가 최고급 렌즈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텟사와 플라나의 실용상의 차이는 플라나가 최대 조리개가 2단계 정도 더 밝다는 점이고 그 외의 성능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짜이스사 루돌프 박사의 디자인,  플라나 와 텟사)(롤라이의 플라나와 핫셀브라드의 플라나 ; 핫셀브라드에 사용되는 플라나는 몸체 안에 있는 거울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공간을 주기 위하여 렌즈 요소를 추가 하여 필림과의 거리를 띄워 놓았다.   이 때문에 같은 플라나라도 특성이 약간 변하여 롤라이의 플라나가 역광에서 플레어(Flare) 현상이 더 적게 일어나고 렌즈의 콘트라스트도 더 높게 나오게 되었다.   공학에서 모든 디자인은 간결할수록 더 우수한 것이다.)

1950년까지는 독일 카메라의 독무대 였다.  35미리 카메라는 라이카와 콘탁스(요즘 일본의 ‘교세라’에서 나오는 콘탁스가 아니라 스투트가르트의 ‘짜이스 이콘’에서 나오던 IIIA 기종을 말한다)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중형 카메라에서는 롤라이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롤라이가 나온 이후로 수 많은 업체들이 롤라이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시장에 진출하였지만 그 어느 것도 롤라이의 명성을 위협하기는 커녕 그 근처에 근접하지도 못하였다.   우수한 렌즈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계적 신뢰성은 브라운슈바이크에 있는 롤라이 공장에서 일하는 긍지에 찬 마이스터(Meister: 장인)들과 당시의 산업계에서 입수할 수 있었던 최고 품질의 재질과 간결하고 기능적으로 설계된 내부 구조 때문이었다.

50년대가 되자 35미리 카메라 시장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값싸고 조악한 품질의 일본 제품과 최고급만 추구하는 독일 제품이 한데 엉켜 일대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이제 대서양 시대를 마감하고 태평양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일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당시의 일본의 기술로는 중형 카메라 시장을 넘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어서 중형의 왕자 롤라이로서는 느긋한 입장이었는데 뜻밖에도 북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웅크리고 있던 바이킹의 후예, ‘빅터 핫셀브라드’씨가 중형 카메라 시장에 뛰어 들었다.

(핫셀브라드 500CM)

‘빅터 핫셀브라드’씨는 스웨덴에서 가내 수공업에 가까운 카메라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 공군의 요청으로 항공 정찰용 카메라를 제작 납품하게 된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빅터씨도 별 재미를 보지는 못하였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 카메라를 민수용으로 제작하여 판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최초의 민수용 모델은 ‘핫셀브라드 1600F’였는데 시장에 나오자 마자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카메라의 디자인은 SLR(Single Lens Reflex: 일안 반사식)타입이고 렌즈 교환이 되고 필림 백도 교환이 되는 모델이어서, 이미 30년이나 묵은 롤라이의 디자인과는 비교도 안되게 참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렌즈는 미국의 코닥사에서 제작한 엑타(Ektar)를 붙였다.   이 엑타 렌즈는 독일을 제외한 나라에서 만든 것 중에 짜이스 렌즈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사실은 한 수 위라고 까지 말할 수도 있다.  광학 산업에서 독일에게 기선을 빼앗긴 미국은 사진계의 거인인 코닥을 중심으로 로체스터(Rochester)시에 모여서 미국 광학 산업을 일구고 있었다.(미국 광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코닥(Kodak), 아이렉스(Ilex), 그라프렉스(Graflex), 엘지트(Elgeet), 칼타(Caltar), 바슈 엔 롬(Bausch and Lomb)이 모두 이 도시에 모여 있었다)  코닥의 렌즈 디자인은 짜이스의 텟사를 그대로 배낀 것인데 여기에 바륨(Ba) 대신 란타니움(Lanthanium)이라는 희토류 광물을 섞어 굴절율을 한층 더 높인 재료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코닥은 자기네가 만든 이 고성능 렌즈에 자랑스럽게 엑타라는 이름을 붙였고 핫셀브라드는 이 렌즈를 장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샷타가 말썽이었다.  콘탁스가 샷타 문제로 라이카에 고전 하였듯이 1600F에 있는 포칼 프레인 샷타는 문제가 너무 많은 제품이었다.   콘탁스의 샷타는 수직으로 24mm를 움직이는데 반해 핫셀브라드의 샷타는 60mm를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길어진 거리에다 최고 샷타 속도를 1/1600초가지 나오도록 해 놓으니 샷타 막이 운동량을 이기지 못하여 한쪽으로 처 박히는 엉킴(jamming)현상이 빈발 하였던 것이다.   빅터씨도 자기 욕심이 좀 과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최고 속도를 1/1000초 까지 낮춘 ‘핫셀브라드 1000F’모델을 후속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장은 계속 되었고 유럽과 미국의 카메라 수리점은 핫셀브라드 기종으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957년에 핫셀브라드는 기존의 디자인에 일대 변혁을 가하게 된다.  500C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새로운 디자인은 카메라의 신뢰성을 올리는 쪽으로 촛점이 맞추어 졌는데 렌즈를 코닥 제품에서 짜이스 제품으로 바꾸면서 말썽 많은 자사의 포칼 프레인 샷타도 과감히 포기하고 독일의 콤퍼(Compur)사에서 제작한 렌즈 샷타로 바꾸게 되었다.    또 렌즈 마운트도 새로운 형태로 설계되어  1600F이나 1000F의 렌즈는 그 후에 나온 핫셀브라드에는 맞지 않게 되었다.   핫셀브라드의 구형 렌즈 마운트는 후에 소련이 불법 복제하여 만든 ‘키에프88’이라는 카메라에 채용되었다.

전쟁이 끝났을 당시 칼 짜이스의 모든 시설과 인원은 소련이 점령한 예나(Jena)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탈출하여 서독으로 망명한 기술자들이 스투트가르트(Stuttgart)에 모여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짜이스 회사를재건 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에 패한 독일인들은 생계를 위하여 낮은 임금도 마다 않고 눈물 겹도록 일해서 얼마 안 있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려는 참이었다.   당시 독일인이 얼마나 근검 절약하였는지는 담배 불을 붙이는데 최소한 다섯 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냥 하나로 돌려가며 불을 붙였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당당하게 실렸던 신빙성 있는 예기인데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의 우리나라가 새마을 운동을 한참 전개하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했던 점은 왜 독일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 처럼 “형씨, 불 좀 부칩시다…”하며 담배와 담배를 마주 대고 불 부칠 줄을 몰랐느냐는 점이었다.
아뭏든 전후 독일 경제 부흥의 신호탄이 된 ‘폭스바겐’ 자동차를 선두로 값싸고 품질 좋은 독일제 상품들이 유럽 시장에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반면에 승전국인 미국의 달러화는 전후에도 엄청난 강세를 유지 하였다.   이것은 곧 엑타 렌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핫셀브라드는 결국 렌즈 마운트를 개조해야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불리한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값싼 짜이스 렌즈로 바꾸고 말았다.  

한편 이와 똑같은 상황이 그 후 70년대 말에 다시 한번 벌어지었는데 핫셀브라드사는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올라버린 짜이스 렌즈를 포기하고 일본 니콘사의 니콜(Nikkor)렌즈를 채용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던 것이다.   중형 카메라용 니콜 렌즈는 이미 젠자 브로니카(Zenza Bronica)의 S2나 EC-TL같은 기종에 채택되어 나름대로 성능을 인정 받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두 번째 결단은 검토로서 끝나고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마터면 오늘의 핫셀브라드 애호가들이 일제 렌즈를 쓰게 될뻔한 사건이었다.

이 500C기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롤라이 제품을 단숨에 시장에서 몰아내었다.  짜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두 회사가 다 자사의 렌즈를 사용하므로 누가 이기던 상관 없는 싸움이었겠지만 롤라이로서는 두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통렬한 일격이었다. 롤라이는 수십 년간 부동의 위치에서 쌓아온 명성을 너무 믿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전통만 고집하고 있는 사이에 시장이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사실 롤라이는 핫셀브라드의 1600F가 샷타 문제로 고전을 하고 있을 때 이 기종을 제압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롤라이는 뭘 믿고 그렇게 당당했는지, 손에 들어온 기회를 전통과 고집 때문에 놓친것이었다.    1966년이 되자 롤라이가 뒤늦은 반격에 나섰다.  

1948년에 핫셀브라드 1600F가 나온 지 무려 18년 만이었다.  롤라이는 핫셀브라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직원을 상대로 거사적인 디자인 공모를 하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 놓고 검토를 하였는데 35카메라를 그냥 뻥튀기 하여 키워 놓은 것 같은 것에서부터 당시 기술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첨단 미래형 카메라까지 다양하였다.   그 중에서 최후까지 남아 경합하던 두개의 디자인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SL66이고 다른 하나가 SLX이다.

(롤라이후렉스 SL66E)
(촛점 조절, 이중 바요넷, 틸트, 내장된 노출계)

시장에 먼저 나온 것은 SL66인데 핫셀브라드에 비하여 여러 가지 장점을 갖춘 우수한 기계였다.  먼저 SL66은 촛점을 맞출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헬리코이드 링(Helicoid ring) 대신에 주름 상자를 달아 엄청나게 길게 연장이 되도록 하였다.   여기에다 렌즈를 꺼꾸로 붙일 수 있는 이중 바요넷 마운트를 만들어 대 배율의 접사 기능을 추가 하였다.   또 마운트를 상하로 8도씩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대형 카메라에서나 가능한 틸트(Tilt) 기능을 구현 하였다.  중형과 소형을 통틀어 이런 틸트 기능을 가진 카메라는 지금까지도 이것 뿐이다.  
샷타는 포칼프레인 샷타로 1/1000초 까지 가능한데 롤라이의 포칼프레인 샷타는 독일제 답게 정밀 기계 공학의 정수로써 아주 신뢰성이 높은 것이었다.   롤라이 SL66이 나오자 이 오래되고 명성 높은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오기를 학수 고대하던 롤라이 팬들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기쁨도 한순간일뿐…..   롤라이SL66은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핫셀브라드의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지금도 핫셀브라드의 가격이 싼 게 아닌데 그 당시야 오죽 했을까?    롤라이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라면 가지기 힘든 물건이 되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1966년이라는 시기도 너무 늦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장 점유율을 가진 상태에서 신제품으로 반격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물러난 시장을 다시 공략한다는 건 두 배의 노력으로도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 것이다.   핫셀브라드는 500C에 이어 500CM, 500EM, 2000FC등으로 신제품을 계속 내 놓으며 기세를 올리고 롤라이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1974년이 되자 SLX가 발매 되었으나 시장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1981년 11월 6일 롤라이는 드디어 도산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한 기업의 흥망을 놓고 너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역사의 방향은 기회가 주어진 순간에(그 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잔인하게 돌아서 버리는 것이다.
워털루에서 웰링턴 장군을 덥친 나폴레옹도 그의 부하 장군이 전선의 북서쪽을 삼일간이나 헤매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프러시아 지원군을 받은 영국군에게 패배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루쉬(Grouchy)라는 이름의 약간 답답한 프랑스 장군은 블뤼허(Blucher) 장군이 이끄는 프러시아군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띄고 병력의 삼분의 일을 데리고 나갔는데 막상 워털루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없는 프러시아군만 찾아 다녔던 것이다.  
“왜?”  
“전투가 벌어지면 돌아오란 예기는 안 했으니까!”  
그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에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써준 명령을 맹목적으로 지키느라 그가 패전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찾던 프러시아 군은 워털루에서 포성이 들리자 나폴레옹군의 옆을 치기 위하여 워털루 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유럽 역사의 방향은 영원히 바뀌어 버리었다.

도산한 롤라이를 구한 것은 United Scientific Holdings,Ltd라는 영국 회사였다.  그 후 몇 차례 더 주인이 바뀌다가 드디어 한국의 삼성 그룹이 인수하여 이제는 한국(?)회사가 되었다.

SL66은 SL66E를 거쳐 SL66SE가 된 다음 생산이 중단되었고 SLX는 SL6006을 거쳐 SL6008로 변하면서 다시 상업 사진가들의 애호를 받게 되었다.   롤라이로서는 무려 30여년 만의 성과다.  6008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진가들의 호응을 받게 된 것은 이제 세월도 많이 변하여 바야흐로 전자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SLX이후로 시도해온 중형 카메라의 전자화가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히 경쟁이 말도 못하게 치열한 상업 사진쪽에서는 가격이 높더라도 헐 씬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종을 찾게 된 이유도 있다.   그리고 이제 핫셀브라드가 너무나 흔해져서 왕년에 ‘전문가의 상징이자 프로의 자존심’ 같았던 핫셀이 이젠 ‘아마츄어가 흔히 쓰는’ 기종이 된 까닭도 있다.

어쨌던 상업 사진가 들은 자신의 스튜디오에 뭔가 흔히 볼 수 없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카메라를 하나쯤 두고 싶어 하는 법이다.

(롤라이후렉스 6008)

내가 처음 롤라이 SLX를 구입한 것은 뉴욕의 ‘Camera Brokers’라는 가게에서 였다.  
(나는 미국으로 출장 갈 때마다 카메라를 하나씩 사왔다.   보통은 50불에서 100불 미만의, 장식품으로나 쓸만한 고풍스러운 옛날 카메라 들이었는데 이 롤라이를 살 때 만큼은 부담이 엄청났다)   그리고는 아틀란타(Atlanta)에 있는 KEH라는 가게에서 SL66으로 바꿨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그리고는 그 다음해에 캘리포니아 산호세(San Jose)에 들러 핫셀브라드500CM을 구입하였다가 결국 다시 롤라이SL66E으로 바꾼 뒤 그대로 정착하였다.    이렇게 방정 맞게 오락 가락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렇게 오도 방정을 떤 끝에 깨닳은 것은 좋은 사진을 찍는 데에는 어느 기종으로도 한점 모자람이 없을 뿐 아니라 진짜로 모자라는 것은 자신의 ‘실력’뿐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핫셀브라드500CM은 유럽의 젊은 귀족 부인 같이 경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롤라이SL66E는 사냥개를 데리고 숲을 산책하는 중년의 귀족처럼 둔탁하고 못생겼다.  그러나 나는 롤라이의 디자이너를 한 수 더 쳐주고 싶다.  롤라이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도 싫증이 나기는커녕 점점 더 믿음직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절제된 미학은 눈에 튀는 멋보다 헐 씬 더 어려운 것이다.   아니면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이조 백자가 고려 청자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롤라이 SL66E는 4X5카메라를 사용하기 전까지 나의 주력 장비로 애용되었다가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책장에 진열되어 폼만 잡고 있다.   한동안은 이 장비를 팔아서 다른 물건을 사는데 보탬이 되어볼까도 생각 했었다.   이렇게 좋은 장비를 사진 찍는데 쓰지 않고 그냥 얹어 놓기만 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고…. 돈도 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팔고 나면 다시 사게 될 것 같지 않아서 아직은 그냥 두고 있다.

롤라이 SL66계열의 기종이 핫셀브라드와 비교해서 사용상 차이가 나는 부분은 촛점을 맞추는 부분인데 롤라이는 바디의 왼쪽 후방에 있는 노브(knob)를 돌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표준 렌즈를 붙여서 쓸 때는 모르는데 망원을 붙여서 손으로 들고 찍으려면 영 불편하다.  카메라 앞부분이 너무 무거워져서 손으로든 채 촛점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라이는 삼각대에 올려 놓고 찍는 장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촛점 노브가 후방으로 간 덕분에  롤라이는 대배율 접사를 할 수 있고 틸트 기능도 넣을 수 있다. 반면에 핫셀브라드는 렌즈에 붙어 있는 링을 돌리니까 손으로 들고 찍기는 아주 좋다.  그리고 롤라이는 사진을 찍고 나면 보통 카메라처럼 화인더가 다시 보이지만 핫셀500CM의 화인더는 한 장 찍으면 먹통이 되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핫셀브라드의 이런 구조는 렌즈 샷타를 사용하는 기종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포칼프레인 샷타를 가진 핫셀브라드2000F 기종은 화인더가 다시 보인다)  
롤라이 SL66E과 SL66SE에는 노출계도 들어 있는데 상당히 정확하다(SL66에는 없다).  그리고 내부 구조가 기계식으로 되어 있어 노출계와 상관없이 카메라는 잘 동작한다.   이것은 야외에서 밧데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예기다.    풍경 사진을 많이 찍는 나로서는 롤라이가 핫셀브라드보다 헐씬 더 유용하다.   핫셀브라드는 사용상에 있어서 네가티브가 크다는 것 이외에는 35미리 카메라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롤라이는 ‘큰 35미리’라고 하기 보다는 ‘작은 4X5카메라’에 가깝다.  

(롤라이와 핫셀의 디테일한 부분)
(메거진, 촛점 , 틸트, 레트로 포커스, 샷타,)

두 기종 다 중형으로서는 최고급이라는 반열에 올라 있다.  중형 카메라가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상의 품질을 보장해 준다.   그리고 신뢰성 있는 구조로 오랜 사용에도 무리 없이 잘 동작한다.   그러나 그런 성능을 염두에 넣고 생각하더라도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진기로 돈벌이에 나선 사람은 하나쯤 가지는 것이 좋다.   상업적인 의미에서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폼나는 카메라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해서 “이노무 세상 살아서 뭣하나…”하는 기분이 드는 사람에게도 하나 권하고 싶다.   그래서 이왕이면 롤라이를 사는 게 좋다.  핫셀브라드로 폼잡기는 이젠 틀렸고 또 롤라이는 한국 회사니까…

이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은 좀 더 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좋은 사진은 사진기의 종류나 유명한 정도와는 무관하게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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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린호프?  맥주 이름인가벼!

맥주 회사가 아니다.   엄청나게 비싼 카메라를 만드는 독일 회사인데 의외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 4X5이상의 대형 카메라에 한정 되어 있기 때문인데 (‘린호프617’이라는 중형 파노라마 카메라도 하나 있긴 있지만) 아무튼 사진쟁이 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종은 아니어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엔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사진기와는 달리 나는 이 카메라를 소유해 본적이 없다.

대형 카메라를 쓰기 시작한 이상 ‘나도 질소냐..’하고 ‘린호프 테크니카(Linhof Technika)’를 하나 사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대형 카메라에 입문했더라면 곗돈을 쪼개서 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라이카와 콘탁스, 핫셀브라드와 롤라이후렉스를 거치면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 카메라에 욕심을 부려봐야 아무 쓸모 없는 일이고 공연히 주머니만 허허하게 만든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 작가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스튜디오 같은데 붙박이로있는 모노레일 카메라가 대부분이어서 ‘린호프 테크니카’같은 카메라를 야외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도 나는 테크니카를 사용하는 분을 알고 있어서 이 카메라를 황송한 마음으로 만져 볼 수가 있었다.  

(린호프 테크니카와 렌즈군)

‘린호프 테크니카’에 대한 예기는 앞서 예기한 카메라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게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중형이나 소형과는 전혀 틀린 관점에서 그 메카니즘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카메라는 먼저 정해진 렌즈가 없다는 것이 틀리다.   니콜 렌즈는 니콘에 맞고 캐논 렌즈는 캐논에 맞고 로콜 렌즈는 미놀타에 맞는다. 그러나 대형 카메라는 아무 렌즈나 아무 바디에 다 맞는다.  대형 카메라에 쓰이는 렌즈는 독일제 슈나이더(Schneider)나 로덴스톡(Rodenstock) 제품이 제일 흔하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렌즈라 해도 사용하겠다는 의향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중소형 카메라에서 처럼 렌즈의 명성에 따라 사진기의 값어치가 오르고 내리는 일이 없다.   내가 쓰는 50만원짜리 ‘다찌하라’나 400만원짜리 ‘린호프 테크니카’나 같은 렌즈를 사용하므로 기본적으로는 같은 품질을 가진 네가티브를 만들어 낸다.

(다찌하라와 렌즈군)

대형 카메라의 성능을(이에 비례하여 값을) 결정하는 것은 ‘무브먼트’이다.  무브먼트는 수평 이동(Shift), 수직 이동(Rise and Fall), 좌우 회전(Swing), 기울임(Tilt)으로 되어있고 이것이 렌즈가 붙게 되는 앞 판(Front Standard)과 필림이 들어가는 뒷 판(Back Standard)에 각각 적용 되도록 되어있다.   이 무브먼트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느냐,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테크니카는 ‘필드 카메라’로서는 보기 드물게 긴 주름 상자와 폭 넓은 무브먼트, 그리고 무브먼트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어들로 구성 되어 있다.  그에 비해 ‘다찌하라’라는 카메라는 일본산 벗 나무로 만들어 졌는데 짧은 주름 상자에 중간 정도의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고 손으로 대충 밀고 당겨서 이 무브먼트를 조정하게 되어있다.  그래도 다찌하라가 한가지 내세울 점은 있는데 금속으로 된 테크니카보다 가볍다는 것이다.   테크니카에서 특이한 점은 보통의 필드 카메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정교한 연동 거리계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자기를 뒤집어 쓰지 않고도 촛점을 쉽게 맞출 수 있게 되어 있다.   단 대형 카메라에만 있는 장점인 무브먼트를 사용하려면 이 연동 거리계가 아니라 촛점 유리판을 들여 다 봐야 한다.

(테크니카 디자인, 다찌하라 디자인 접사)
(테크니카의 나사들, 주름 상자 전개, 무브먼트)
(크라운 그래픽, 손으로 들고 찍는 대형 카메라)

이 정도의 장점 때문에 8배나 더 비싼 장비를 구입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스튜디오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야외로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요량이면 제일 중요한 것이 무게이기 때문이다.   소형 카메라야 덩치가 다 그만 그만 하니까 무게가 차이가 나도 잘 못 느끼지만 대형 카메라는 욕심껏 가방을 꾸리다가는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까지 될 수 있다.    이런 가방을 메고 촬영지를 돌아 다닌다는 것은 사진을 찍겠다는 의도는 별로 없고 체력 증진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가방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슈나이더의 90미리 슈퍼 안규론(Super Angulon)을 제외하고는 작고 가벼운 구형 렌즈을 선택하였다.   둘 다 1950년대에 생산된 미국제인데 하나는 그라프렉스(Graflex)사의 135미리 옵타(Optar)이고 다른 하나는 코닥(Kodak)의 명기 203미리 엑타(Ektar)이다.    이미 40-50년은족히 된 물건들인데 신형 렌즈와 비교해 보면 크기와 무게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능에서도 차이가 난다.    신형 렌즈는 4군 6매의 플라즈맡(Plasmat) 디자인이고 앞 유리와 뒷 유리가 커서 무게도 꽤 나가지만 더 선명하고 포괄 범위(Image Circle)도 넓다.    

구형 렌즈는 옵타의 경우는 3군 4매의 텟사 디자인(Tessar Design)이고 엑타의 경우는 4군 4매의 알타 디자인(Artar Design)이다.    최신형 플라즈맡 디자인의 렌즈에 비하면 해상력도 떨어지고 포괄 범위도 적지만 대형 카메라쯤 되면 이런 성능 차이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네가티브가 충분히 크다.   그리고 구형 렌즈는 신형 렌즈에는 없는 독특한 매력(주로 약간 남아있는 구면 수차와 보다 간단한 디자인에서 나오는 높은 콘트라스트에 의한 부드러운 묘사력)도 있기 때문에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옵타, 엑타, 텟사 렌즈 와 신형 지로나 렌즈)(알타 디자인 과 플라즈맡 디자인)

하지만 내가 만약 필드 카메라가 아닌 모노레일 카메라를 구입해야 한다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린호프의 ‘테크니칼단(Technikardan)’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테크니칼단은 모노레일을 3단으로 접을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 배낭에 쉽게 들어가 야외에서 사용하기도 좋고, 무브먼트가 제한되어 있는 테크니카에 비하여(필드 형 카메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한정에 가까운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저렴한 가격의 모노레일 기종은 레일이 접히지 않기 때문에 배낭 하나에 장비를 꾸려 넣기 힘들고 또 쇠파이프 같이 생긴 레일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들고 다니기는 무리이다.   그 쇠파이프를 호신용으로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내가 주로 찍는 풍경 사진에는 테크니칼단의 화려한 무브먼트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직접 써보지 않은 장비이기 때문에 린호프에 대한 예기는 부실하지만 이 정도로 해두자.

(대형 카메라의 렌즈)
(슈나이더 렌즈)
(짜이스와 괼츠의 렌즈)

내가 비싼 카메라를 별볼일 없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싼 카메라의 기능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능과는 상관없이 가격에 현혹되어 ‘그것을 사야만 사진이 잘 된다’ 고 생각하는 것을 말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경험상, 사진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라 단언할 수 있다.

나는 4X5용 확대기로 오래된 오메가D2를 사용해 왔다.  이 확대기는 너무 오래되어서 수평이 맞지를 않는다.
즉 필림이 들어가는 네가티브 케리어 와 렌즈가 매달려 있는 렌즈 마운트와 인화지가 놓이는 바닥판이 전혀 평행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 이렇게 수평이 맞지 않으면 인화지의 중심 부분에 촛점을 맞출 때 양끝이 초점이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확대기를 쓰려면 이젤 밑에 책이나 볼펜을 이것저것 끼워 넣어서 수평을 최대한 맞춰야 한다.   그래도 네가티브 케리어와 렌즈 마운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둔다. 물론 이 확대기를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면서 수평을 잘 맞출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열악한 상태로 4년 동안은 잘 써왔다.   기본적인 인화는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전시회에 사용할 16X20이상의 인화를 하려니까 도저히 쓸 수 없는 지경이다.
나로서는 정이 많이 들은 물건이지만 이 오래된 확대기를 은퇴 시키고 200만원짜리 새 확대기를 하나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마누라도 사진쟁이 인데다가  오메가D2의 수평을 맞추느라 확대 작업 때마다 끙끙거리는 것을 보아온 터라 이 과감한 투자 계획을 쾌히 승낙하였다.    나의 대형 카메라가 50만원 짜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대기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니 어쩌겠는가?   아마도 내가 가진 장비 중 두 번째로 비싼 물건이 될 것이다.   (첫번째는 책장 위에 올라가 장식품이 되고만 롤라이후렉스 SL66E다)

사진 장비를 사는 것은 사진 쟁이들에겐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것을 사던지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구별할 줄 아는 혜안은 꼭 필요하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이러한 기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난 뒤에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통하여 비로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암실 동반자, 오메가 D2.  조금 손을 보면 아직도 완벽한 확대기로 동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쇳덩이를 분해 조립하여 손을 보는 것보다 마누라를 졸라 새 확대기를 사는 편한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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